한국의 캔디캔디 팬분들을 위해 귀한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해주신 chosen615 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Ms Puddle
일기장
3장
레이크우드의 저택에 도착하기 전, 놀랍게도 캔디는 라건 가에 들렀다 갈 것을 요청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기꺼이 이에 응했다.
“캔디 네가 원한다면. 너와 시간을 보내는 것 빼곤 오늘 일정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녀가 씩 웃었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녀의 미소.
“고마워요.”
나는 시동을 끈 뒤 먼저 차에서 내려 그녀 쪽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우아하게 한 걸음을 내딛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는데, 어느 샌가 잡은 손을 놓았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보닛을 쓰려고 하자 내가 물었다. “도와줄까?”
내 질문에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좋다는 표시를 하자 나는 보닛 끈을 묶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왼팔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가씨를 호위하겠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그녀는 가볍게 팔짱을 끼며 저택의 정문 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주세요, 알버트 씨.”
구내에 있는 사람이라곤 우리뿐이었다. 캔디는 저택 주변을 거닐다가 하인들의 숙소 앞에, 이어서 정원과 마구간 앞에 멈춰 섰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보고 있는 광경에 빨려가기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런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옆에서 잠자코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먼저 말해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좋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어렵게 입을 뗐다.
“알버트 씨, 전 오래 전 닐과 이라이자의 말동무가 되겠다는 조건으로 이곳에 왔었어요. 저처럼 다 자란 아이는 포니의 집에 폐만 끼칠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죠. 말동무가 아니라 저를 입양해줄 가족을 원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인생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 전에도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 나는 그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궁금했다.
“이곳에서 겪은 시련이 안소니, 스테아, 아치, 그리고 알버트 씨와의 인연으로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캔디. 저번 편지에 썼던 적 있지만, 네가 폭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난 네 언덕 위에서 만난 소녀라는 걸 알아볼 수가 있었지. 그리고 너처럼 어린 소녀가 라건 가에서 그토록 고생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너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고. 내 지위를 이용해서라도 너를 어떻게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지.”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그때 이후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죠. 하지만 알버트 씨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어요.”
나는 그녀를 또렷이 바라보면서 말했다. “글쎄, 네 도움과 친절이 없었다면 기억상실증에 걸렸을 때 나는 완전히 삶의 이유조차 잃었을지도 몰라. 캔디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그녀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운명이 우리를 만나게 한 거야”라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지금은 이를 말할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았다.
캔디는 갑자기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내 팔을 놓고 걸어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녀가 혹시라도 기분이 좋지 않은지를 묻고 싶었으나, 갑자기 그녀가 팔을 머리 위로 높이 들더니 발레리나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외쳤다. “이곳에 알버트 씨와 함께 다시 와서 제가 지금 얼마나 기쁜지 모르시죠, 알버트 씨?”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나는 더욱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내가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자 그녀가 물었다. “그럼 이제 세 개의 문으로 가볼까요?”
“좋지. 근데 그 전에 뭐라도 먹는 게 어떨까. 이미 점심시간을 놓친 지 오래인데.”
“좋은 생각이에요! 무지 배고팠거든요.”
우리는 차로 돌아갔다. 라건 가에서 레이크우드의 저택까지는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도착해서 내리자마자 나는 캔디에게 우리가 아무데서나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소풍 도시락 준비를 아침에 미리 부탁해두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하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갑작스레 주방에 나타나자 하인들은 놀라 말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모두 하던 일을 멈추었는데, 한 사람만이 예외였다.
나는 거기 있던 유모를 보고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녀는 우리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그리고 로즈마리 누님과 나까지 돌보며 우리 가문을 위해 긴 세월동안 일해 왔었고, 이미 은퇴한지 오래지만 가끔 다른 하인들을 도우러 가끔씩 일터로 돌아오곤 했다.
그녀 역시 나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나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젊은 윌리엄 주인님, 너무 오랜만입니다!”
부서질 듯 연약한 그녀를 안으며 나는 유모가 이제는 정말로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걸 느꼈다. 이미 손자 손녀를 여럿 둔 할머니이기도 하니까.
잠시 후에 그녀는 나를 놓고 내 옆에 조용히 서있던 캔디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내게 물었다. “여기 이 아름다운 아가씨를 제게도 소개해주지 않으시겠어요?”
“유모, 이쪽은-”
캔디는 살며시 내 팔 위에 손을 얹어 나를 가로막았다. “제가 직접 인사드리고 싶어요.”
“그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캔디가 유모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블레어 부인.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어요. 제 이름은 캔디스 화이트예요. 캔디라고 불러주세요.”
유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정말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녔네요, 캔디스 양.”
그런데 그녀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나는 유모가 아마 하인들로부터 캔디의 이름을 들었으리라고 예상했다. 캔디가 우리의 입양 관계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하인들은 그녀가 내 양녀라는 것을 알아보았을 테다. 어쨌든 여기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수고해주셔서 고마워요, 여러분.”
하인들은 내 뜻을 알아차리고 각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헤어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유모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말했다. “캔디스 양과 함께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주인님!”
나는 음식이 담긴 바구니를 집어 들고 어디에서 식사를 하면 좋을지 캔디에게 물었다. 그녀는 수문 쪽으로 가자고 하며 덧붙였다. “아치가 예전에 그 문 주변 잔디밭에서 종종 낮잠을 자곤 했었죠.”
나는 약간 마른 잔디밭에 돗자리를 펼쳐놓고 그 위에 음식들을 꺼내놓았다. 바구니 속에는 하인들이 만든 자그마한 샌드위치 여러 개와 과일들이 담겨 있었다. 경치를 구경하며 맛있게 점심을 먹는 동안, 캔디는 이곳에서 아치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닐과 이라이자에게 속아 곤경에 처했을 때 스테아가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를 이야기했다. 마지막에는 그가 발명한 자동차가 오작동을 하여 호수에 빠졌다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잠시 바구니를 내려놓고 돌문으로 가보았다. 캔디는 끝도 없이 레이크우드에서 세 소년들과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이는 내게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다만 돌문에 도착했을 때엔 둘 다 침묵을 지키며 젊은 나이로 전사한 스테아를 위해 추모의 기도를 했다.
우리는 그 길로 곧장 장미의 문 쪽으로 갔다. 우리 둘 사이에는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깔끔하게 손질된 정원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캔디의 두 눈은 쓸쓸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내게도 이곳은 행복하고도 슬픈, 많은 추억이 되살아나는 장소였다. 로즈마리 누님은 너무 허약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가 되기까지 그녀의 아들과 정원에서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비록 가정 교사와 헌신적인 하인들로 둘러싸여 대부분의 일상을 보내던 나였지만, 그 둘과는 가끔씩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누님을 떠나보냈을 때 난 십대 소년에 불과했고, 누님의 죽음은 당시 내 마음을 극심하게 뒤흔들어놓았다. 누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던, 내가 마음속으로 유일하게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난 어미를 잃은 작고 어린 조카에게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로즈마리 누님이 세상을 떠난 이후 에르로이 고모님이 직접 나를 외부로부터 보호할 것을 선언하셨기 때문에 조카에 대해 제대로 알 겨를조차 없었다. 우리는 시카고로 돌아갔고, 그때부터 단 하루도 고모님으로부터 내가 가문의 유일한 희망이요 하나뿐인 상속자라는 말을 듣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것이 내가 어린 안소니를 포함하여 다른 사촌 또는 조카들로부터 아예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에르로이 고모님은 나라는 사람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나를 지우려 했다.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윌리엄 큰할아버지로 알려진 채 그들을 멀리서만 바라보아야 했다.
캔디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던 대로, 외로운 꼭두각시일 뿐이었던 나다. 나는 친구 하나 없이 냉정하고 과묵한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났고, 지루하고 왜곡된 삶을 너무나 증오한 나머지 여러 번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내가 포니의 언덕에서 울고 있던 어린 소녀를 만난 것은 레이크우드에서 형식적이고 불편한 친척들과의 만남에 싫증을 내고 도망쳐버렸을 때였다. 귀엽게 웃던 그 소녀가 훗날 내가 모두에게 버림받고 외면당할 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정성스레 보살펴주는 천사가 될 줄은, 그리고 지금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여인이 될 줄은 몰랐다.
“알버트 씨?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나를 회상 속에서 깨웠다.
멋쩍게 웃으며 내가 대답했다. “미안해, 캔디.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
“아녜요.” 그녀가 말했다. “그 숲으로 데려다 주실 수 있으세요?”
“그 숲? 어떤 숲을 말하는 건데?”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는 얼굴을 확 붉히며 머리카락 몇 가닥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내가 지금 느끼는 것만큼 혼란스럽고 말을 꺼내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뇌리에 스쳤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예전에 여우 사냥을 했던 숲을 말하는 건-”
그녀는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청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북받쳐 오르는 것만 같았다.
“괜찮겠니?”
그녀는 용기를 내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다시 못 가봤으니, 이제 다시 가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요… 알버트 씨가 같이 있어주신다면…”
나는 그곳을 다시 찾는 것이 그녀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 될까봐 머뭇거렸으나, 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한 것처럼 보였다. 힘든 기억을 억지로 묻어버리려 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오히려 그녀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내 팔을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엄숙했고, 빛나는 두 눈은 내게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 존재만으로도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듯하여, 나는 용기를 냈다.
“기꺼이 동행할게. 근데 걸어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리라서 저녁 시간에 맞추어 여기로 돌아오기 힘들 것 같은데. 오늘 밤까지 내가 너를 포니의 집으로 데려다 주어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겠지?”
나는 지금은 그 일기장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아직까지도 저녁 식사 전에 줄 지 이후에 줄 지 고민 중이었다.
“그렇겠네요.”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에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변명하듯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말을 타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역시나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예전에 우리가 같이 살던 시절에, 그녀는 안소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우 사냥 사고 이후로 다시는 말을 타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테리가 강압적으로 그녀를 말에 태우고 달려 그 끔찍한 추억을 억지로 잊게 만든 적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사랑했던 소년을 잃은 그녀가 완전히 치유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됐어 그럼. 말 타지 말고-”
그러나 그녀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굳게 결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아녜요! 말을 타요.”
나는 그녀를 잘 알았다. 그녀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고, 한 번 마음을 결정하면 그 누구도 그녀를 꺾을 수 없었다. 오래 전 어느 날 밤 공원에서 나를 붙잡으며 곁에서 보살피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좋아, 캔디. 날 따라와.”
마구간으로 가는 동안 캔디는 내가 자신이 정확히 어느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지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있어. 그때 나도 그곳에 있었으니까.”
“알버트 씨가 거기 계셨었다고요?”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정신을 잃은 너를 저택으로 데려갔었던 사람이 나였어. 의사가 안소니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지…”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을 다시 회상하는 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당시 여우 사냥 자리에 나와 있었던 나와 조르쥬는 안소니와 캔디가 무리에서 떨어진 것을 알고 따라가 둘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고, 조르쥬는 즉시 말을 몰아 의사를 부르러 달려갔다. 나는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를 기도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잠시 후에 말에서 내려 안소니의 생기 없는 얼굴을 본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때의 소름끼치는 정적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숲 속에 오직 내 심장 박동 소리만이 울렸고, 세상이 그대로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캔디는 내가 말에 안장을 얹는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기 밤색 암말이 순하니까, 네가 타기엔 좋을 거야.”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홱 돌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내가 물었다. “마음을 바꾼 거니?”
그녀는 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에서 그러는 건지 이해하자,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직접 타지는 못하겠다는 거지?”
어두침침한 마구간 안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그녀의 눈빛이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내가 제안했다. “그럼 같이 타자.”
어두웠던 그녀의 표정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약간 헝클어뜨렸다. 그리고 우리 둘을 태울 수 있는 길들여진 야생마 한 마리를 골랐다.
나는 안장 끈이 잘 조여져 있는지 확인한 후 먼저 말에 올라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두 다리를 한 쪽으로 모은 상태로 앞을 보고 말 위에 앉았다. 그녀가 준비된 듯하자 나는 부드럽게 고삐를 당겼다.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긴장되었는지 내게 기댔다. 금빛 머리카락의 달콤한 향기가 나를 혼미하게 했다. 상류 여성들이 뿌리는 향수 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순수한 백합 향기였다. 그녀가 나에게 너무나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십 분에 정도 달리고 나서 우리는 숲 가까이에 도착했다. 마음이 어지러웠지만, 여기서부턴 말에서 내려서 걸어야 할 성 싶었다. 나 또한 오랫동안 이곳을 피해왔기 때문에 사고 이후로 처음 와보는 것이었다. 쉽게 캔디를 말에서 내려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어 과거와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근처에 있는 나무에 말을 매는 동안, 캔디는 눈을 들어 주변을 에워싼 상록수들을 아무 말 없이 응시했다. 야생 장미와 활짝 핀 블루벨 꽃이 숲 속을 물들이고 있었으며,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새들이 지저귀었다. 밝은 오후의 햇볕이 숲을 비추니 마치 어디선가 요정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돌아왔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고통부터 슬픔까지 수많은 감정이 얽혀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안소니가…”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안소니의 죽음을 자기 탓으로 여기고 죄책감을 안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네 탓이 아니야, 캔디. 시간을 돌려 모든 것을 다시 되돌려놓고 싶다…’
그녀가 지금까지 혼자서 고통스러워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괴롭고 마음이 아파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 발짝 다가가 내 품 안으로 그녀를 끌어당겨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녀가 들을 수 있도록 목을 굽히고 말했다. “널 입양한 건 바로 나야, 캔디… 여우 사냥을 하게 한 것도 나야…”
나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 말에 잠시 움찔하더니 소리를 내어 엉엉 울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녀를 더 바싹 끌어당기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나는 눈물을 참아보고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가 모든 내면의 감정을 보이며 나만을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 이상, 지금 슬픔으로 무너져버릴 수는 없었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이 여인을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었고 나는 살며시 그녀를 내 품에서 떼어놓았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되도록 조용히,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캔디. 그 사고는 어느 누구 때문도 아니야.”
이에 그녀는 젖은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훌쩍였다.
“죄송해요, 제가 셔츠를… 오, 이런…”
맞다. 내 셔츠 윗부분은 그녀가 흘린 눈물로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 셔츠가 불편하게 달라붙을 정도였지만,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캔디.” 나는 사랑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속으로 힘들어 하면 상처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아. 이제 마음 놓고 울었으니까 훨씬 나아질 거야.”
나는 손가락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지만,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사랑의 뜨거운 감정에 지배당해 몸을 굽히고 오래 오래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뺨에도. 다시 몸을 펴자 그녀가 나를 황홀하게 하는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이성을 잃고 그녀의 입술을 훔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말했다. “캔디, 이제 갈까?”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적어도 내겐 말을 타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시 말 위에 올라탔지만, 이번에는 달리지 않고 말이 걷게 내버려두었다. 왠지 오랫동안 내 어깨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내게 기대어 있는 캔디도 훨씬 긴장이 풀려 편안해 보였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나는 아까 숲 속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금 떠올려보았다.
마침내 우리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 하루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날로 기억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끔찍했던 사고에 대하여 둘 다 똑같이 아프고 힘든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우리의 고통을 덜어놓은 것 같았다. 캔디도 이렇게 느낄까? 그녀와 내가 이제 예전처럼 서로 자주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우리는 이미 친구 사이를 뛰어넘은 듯했다. 그리고 오늘의 경험은 마치 우리의 영혼이 연결되어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하여 준 것처럼 우리의 관계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불자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코를 간지럽혔다. 그녀는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면서 물었다. “알버트 씨, 로즈마리 씨가 돌아가시기 전 안소니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제가 말한 적이 있었던가요?”
내가 고개를 젓자 그녀가 말했다. “꽃은 더욱 아름답게 피기 위해 진단다. 사람은 죽었을 때 가슴에 남아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거야.”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로즈마리 누님에게서 이러한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말이 무얼 의미하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동안, 캔디가 엄숙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안소니가 해준 말이에요. 제가 이 말을 언젠가 마음으로 깨닫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죠.”
누님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잃었지만, 그리운 추억은 지금까지도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는 이상, 그들은 절대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로즈마리 누님은 왜 어린 안소니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누님은 당시 이미 병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견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제 닥치게 될지 모르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할 안소니를 위로했던 것이 아닐까. 다만 안소니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짧은 생애를 살게 될 것임은 알지 못했을 터다.
어린 안소니와 내가 누님의 자리 곁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얼핏 기억나기로는 그 자리에서 조르쥬와 빈센트 씨도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님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빈센트 씨는 가문 모임의 자리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회상이 미치자 누님 부부가 결혼할 당시에 어른들의 반대가 극심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캔디에게 로즈마리 누님과 빈센트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빈센트 씨는 상류층은 아니었지만 훌륭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었다. 누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온화하고 친절했지만, 자신의 행복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절대로 뜻을 굽히지 않고 고집을 부릴 줄 알았다.
“캔디, 그때 난 너무 어려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어. 그래도 누님이 에르로이 고모님께 했던 말은 기억 나.”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녀가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
“‘빈센트의 가문과 부가 우리 가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셔도, 그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제가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저를 온전히 행복하게 하지 못할 거예요. 그와 결혼할 수 없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제 가문의 성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두 눈을 깜빡였다. “고모님이 격분하셨지. 만약 고모님이 로즈마리 누님을 친딸처럼 여기지 않으셨다면, 뺨을 때리고도 남았을 거야.”
놀라움 때문인지, 캔디의 호흡이 가빠졌다.
내가 덧붙였다. “믿든 안 믿든, 그때 누님의 확고한 말과 행동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 속 깊이 남아 있어. 로즈마리 누님처럼 나 역시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거야. 절대, 절대로 어느 누구도 전혀 모르는 다른 여인과 나를 강제로 결혼시키지 못할 거야.”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 말의 이면에 무슨 뜻이 담겨져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좀 전에 눈물을 흘렸기 때문인지 눈이 약간 빨갛게 부어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금빛 머리카락이 태양빛 아래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후에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거두었다.
우리는 마구간으로 돌아왔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걸 느낀 나는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기 위해 나는 화제를 돌렸다. “캔디, 아드레이 가문의 초상화를 보러 가지 않을래?”
캔디는 이에 흔쾌히 동의했다. 얼굴에 여전히 분홍빛이 감돌고 있었다.
저택 내 복도를 걷는 동안, 그녀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리로 가면 저번의 그 일광욕실이 나오죠?”
“맞아.” 내가 대답했다. “거기가 초상화를 걸어두는 방들 중 하나거든.”
“기억나요. 그 모험 같았던 날을 어떻게 잊겠어요?” 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목적지에 다 와갈수록, 점점 더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이제 곧 오래된 일기장을 본 그녀의 반응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일광욕실은 동향이어서 아침엔 강한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지만, 늦은 오후에는 비교적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이곳은 변함없이 내가 가장 즐겨 찾는 은신처였고, 주변에 들를 때마다 언제이건 들어올 수 있도록 집사가 불을 밝혀두곤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캔디는 은은하고 적당히 밝은 실내의 밝기에 놀란 듯했다. 아 처음으로 아침 시간에 왔을 때와는 색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넓은 방 안을 낮은 높이의 램프 여러 개가 밝히고 있었다. 조용히 생각에 잠기기에 딱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멈춰 서서 초상화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감상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방에 한 개뿐인 책상 정중앙에 올려놓은 일기를 그녀가 발견하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우리 조상들, 부모님, 그리고 로즈마리 누님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킬트를 입은 십대 소년의 초상화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이 소년이 안소니가 아니라 나인 것을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했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와, 정말로 로즈마리 씨과 안소니를 쏙 빼닮으셨네요…”
그다지 헷갈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새 그녀의 시선은 책상 위의 무언가에 꽂혀 있었다. 그녀는 나를 잠시 보더니 책상 쪽으로 다가가 마치 매우 귀중한 것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일기장을 들어올렸다. 내 가슴이 정신없이 빠르게 뛰었다. 이 순간을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건만, 정작 닥치니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지도 못할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리고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나는 길게, 그리고 깊게 한숨을 내쉬고 심호흡을 한 후에 말을 꺼냈다. “일기장, 진작 돌려줬어야 했는데… 그건 너의… 보물이잖아.”
의도치 않게 거의 웅얼거리는 수준의 작은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지금은 잠시 눈을 감고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너만의 비밀을 담은 일기장이니까, 계속 내가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거겠지?”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나는 일광욕실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는데, 갑자기 그녀가 달려와 나를 붙잡았다.
그녀는 내게 눈을 맞추고 쾌활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알버트 씨. 이따가 가져갈 테니까, 잊지 않도록 꼭 얘기해주세요.”
일기장은 원래 있던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이따가 일기장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기분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나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알았으니까 걱정 마. 그럼 이제 저녁이나 먹을까?”
캔디와 나는 둘 다 자연을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함께하는 포근하고 가슴 따뜻한 저녁 식사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린 내가 예전에 ‘해적’처럼 분장하고 살던 폭포 부근의 작은 오두막으로 보트를 타고 갔다. 보트는 다름 아닌 몇 년 전에 스테아가 캔디를 위해 발명한 백조 보트였는데, 고장 난 것을 내가 얼마 전에 다시 수리한 참이었다. 그녀는 내가 저녁 식사 계획에 대해 설명하자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우리는 오두막 내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간단한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난 그녀의 요리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음을 눈치 챘다. 내가 칭찬하자 그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났다.
바깥 공기는 상쾌했다. 기분 좋게 바깥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황홀한 노을이 펼쳐졌다. 진정 신의 걸작이라 할만 했다. 우리는 분홍, 보라, 빨강, 황금, 주황빛 색깔들이 축제를 벌이는 하늘을 구경하면서 동시에 숲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음악소리를 즐겼다.
해가 완전히 산 뒤로 넘어가자, 나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캔디,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아.”
잠시 슬픈 기색이 스쳤지만, 그녀는 곧 명랑함을 되찾고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오두막 가까이로 우리를 데리러 올 사람을 불렀고,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캔디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에메랄드 빛 눈이 반짝거렸다.
잠시 후, 나는 일기장을 가지러 그녀를 데리고 다시 일광욕실로 들어갔다.
“캔디, 선물이 하나 더 있어. 포니의 집 아이들한테 줄 선물을 몇 가지 사두었거든. 가져올 테니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싫어요.” 그녀가 완강히 거절했다. “저도 같이 갈래요.”
내가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그녀는 일기장을 챙긴 다음 나를 따라나섰다.
나는 리본을 묶은 커다란 상자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었고, 지금 열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돼, 캔디.”
금세 뿌루퉁해진 그녀를 보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달이 떴고 밖이 꽤 쌀쌀하니, 나는 그녀가 오늘 아침에 입고 왔던 봄 코트를 걸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어느새 짐을 차에 싣기 위해 집사가 보낸 하인들이 와 있었다. 모든 채비를 마친 뒤 나는 차 문을 열고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그녀에게 말했다. “떠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아가씨?”
차를 타고 돌아가는 동안에는 우리 둘 다 매우 조용했다. 각자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처럼 그녀를 만나 함께 오래 시간을 보낼 날이 또 언제 올 수나 있을지 몰라 걱정이었다. 왠지 다음번에는 양부로서, 보호자로서 그녀를 만나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행복이라는 걸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새겼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걸. 내가 양아버지가 그녀의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라면, 꽤나 힘들 듯했다.
우리가 포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이미 잠든 지 오래였다. 포니 선생님과 레인 선생님이 고아원으로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셨다.
이제 정말 떠날 때가 되자, 난 무거운 마음으로 도무지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입 밖에 냈다. “그만 갈게.”
캔디가 재빨리 한 마디를 했다. “배웅해도 되죠?”
그래서 나는 두 분의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차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캔디, 오늘 정말 오랜만에…”
갑자기 그녀가 내게 안기는 바람에 나는 마지막 인사를 끝맺을 수 없었다. 그녀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허리에 팔을 두르자 난 말 그대로 완전히 녹아내렸다. 그녀는 천천히 포옹을 풀면서 촉촉이 젖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잘 가요, 알버트 씨. 가는 길 조심하시구요.”
나는 그녀의 볼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대답했다. “잘 자. 또 편지할 거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나는 차를 향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시동을 켜면 그녀에게 인사했다. “잘 있어, 캔디.”
그녀가 조용히 웃었다. “알버트 씨도요. 언제쯤 다시 알버트 씨를 볼 수 있을까요?”
“노력해볼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차를 몰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