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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1 2016

일기장-4장

Thank you very much, chosen615!! ❤ ❤  – Ms Puddle

일기장

4장

레이크우드의 저택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다른 모든 하인들은 퇴근한 뒤였고, 유모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정문 앞에서 계속 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유모, 왜 아직까지 안 들어갔어? 집까지 모셔다드려요?”

그녀는 어머니의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하인들 숙소에 묵을 거랍니다. 남는 방이 많거든요.”

“우와!” 하지만 나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근데 해뜨기 전에 시카고로 돌아가야 해서, 어차피 내일 유모를 볼 수 없을 텐데.”

“알아요, 압니다 주인님. 그저 이 늙은이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유모는 내게 숙소 쪽으로 바래다달라고 부탁했고, 함께 걸어가는 동안 그녀는 난데없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캔디스 양을 사랑하시죠, 주인님?”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유모의 예리한 감각은 여전했다. 어떻게, 뭐라고 대답하지?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주인님의 눈빛을 보았어요. 주인님의 두 눈이 아버님의 부드러운 푸른 눈과 완전히 똑같다는 것, 아세요? 어머님과 사랑에 빠지셨을 때의 아버님 눈빛이 꼭 그러했었죠.”

나는 그저 웃음만 지었고, 유모는 이를 긍정적인 답변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조용히 내게 충고했다. “캔디스 양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세요. 캔디스 양도 주인님과 같은 마음일 거예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유모는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 거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못 이기는 척 약간의 귀띔을 해주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오늘처럼 소중한 휴일을 온전히 주인님과 보내지도 않았겠지요.” 그리고 그녀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면서 덧붙였다. “혹시 걸림돌이 되는 게 입양이라면, 주인님이 직접 이를 정리하시면 되겠지요. 아닌가요?”

나는 유모가 다른 하인들로부터 캔디와 나의 관계에 대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어느새 숙소에 다다르자 유모는 두리번두리번하며 주변에 엿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내게 귓속말을 했다. 또 다른 폭탄 발언이었다. “윌리엄 주인님, 젊은 여성에게는 평판이란 게 아주 중요하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뜻이지?

하인들은 캔디가 나와 한 때 동거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뭐, 모든 게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소위 약혼 파티 때 모든 손님들 앞에서 이를 폭로한 닐 라건 덕분이었다.

“유모, 캔디는 그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순결한 여인이야!”

나는 속으로 매우 화가 났지만, 억누른 채 약간 고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주인님, 소문이란 게 있으니까요.”

유모와 인사를 하고 침실로 돌아와 나는 내가 캔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보았다. 지금 그녀가 많은 소문들 속에서 더러운 허물을 쓰고 있음은 분명했다. 어쩌면 당분간 그녀와 모든 연락을 끊고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유모 말대로 그녀가 내게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어진 몇 주간은 지금까지의 시간 중에서도 가장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빡빡한 업무 일정이 시간의 대부분을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캔디의 편지를 얼른 받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주중 막바지에는 조르쥬가 중요한 거래 대상과의 만남이 뉴욕에서 이루어지기로 예정되어 있으니, 꼭 출장 일정을 확인 바란다는 보고를 해왔다. 그래서 우린 일요일에 뉴욕으로 떠났다. 그 다음 주에 시카고로 다시 돌아오고 나서, 나는 서재 내 미결 서류함에 캔디의 편지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얼른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우선은 가문 어른들과 식사부터 해야 했다.

잠시 후 서재로 돌아온 나는 캔디의 편지부터 뜯어보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감정에 사로잡힌 채 이를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윌리엄 알버트 아드레이 씨, 또는 꼬마 버트 씨께.

꼬마 버트 씨, 요즘도 여전히 일을 많이 하시나요?

저야 뭐 언제나와 같이 해피 진료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지금 막 아이들을 잠자리에 들게 한 참이랍니다.

꼬마 버트… 별명을 알려주셔서 너무너무 기뻐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버트’ 아니면 ‘버트 아저씨’로 불러달라고 얘기했건만. 그녀는 로즈마리 누님이 지은 본래의 별명을 더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레이크우드에 같이 갔던 날 느낀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말했다. 숲 속에서 그녀가 내 팔에 안겨 울었던 일도 언급되어 있었다.

알버트 씨도 그럼 지금껏 저와 같은 죄책감을 가지고 계셨던 거로군요.

알버트 씨한테 안긴 채 울어서 죄송해요. 멋진 셔츠가 엉망이 되었죠.

이제는 다시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에요.

알버트 씨,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내가 알고 싶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맞아요. 그 일기는 온갖 테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죠.

저도 사실 일기장 때문에 걱정하고 있긴 했어요.

이제야 비로소 일기장이 제 곁으로 돌아왔네요.

나는 이 부분에서 잠깐 심호흡을 했다.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하지만 다시 열어보지는 않았어요.

알버트 씨께 다시 드릴까 해요.

제가 배지를 돌려드렸을 때, 그것을 다시 제게 맡기신 것처럼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곧바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나는 그 부분을 적어도 세 번 이상 읽었다.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조차 의심되었다. 그녀는 확실히 일기장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런던에서 기록한 내용들을 전혀 다시 읽어볼 마음이 없다는 건가? 일기장을 열어보지도 않았다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건가? 게다가, 왜 그것을 내게 도로 주겠다는 걸까? 포니의 집 선생님들께 보여드리거나 추억을 담아놓는 상자 속에 보관하지 않고.

당황스러웠던 나머지, 나는 편지의 그 다음 이어지는 내용에 집중하지 못했다.

시간이란 참 경이롭고도 무섭네요.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그래도 멋진 추억은 언제까지나 제 가슴 속에 남아있겠죠. 그리고 덕분에 전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진정 멋진 여성이었다. 미래가 무엇을 불러올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항상 자신감이 넘쳤고 낙관적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화제를 돌린 거지?

저는요- 저를 포니의 집에 버린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해요.

덕분에 알버트 씨를 만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녀는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고아였기 때문에 나를 만날 수 있었다니.

평생 감사해도 충분치 못할 사람은 바로 저예요.

알버트 씨, 지금은 바로 여기가 제 행복이 있는 곳이랍니다.

아, 오늘 밤도 또다시 잠에 들지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친애하는 꼬마 버트 씨는 아주 멋진 꿈을 꾸게 되시길 바라요.

사랑과 감사를 담아

캔디

나는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깊게 기대 앉아 두 눈을 꼭 감았다. 어떤 말로도 이 순간 내면에 요동치는 혼란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라났다. 어려서부터 내 생각의 결론을 내고 추론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이를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해석하고 그 뜻을 찾아내는 것은 내게 무리였다.

난 답장을 써볼 요량으로 펜을 들었으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섞이는 바람에 차분히 정리하려고 할수록 더더욱 복잡해졌다. 조만간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빈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스스로가 더 이상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참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조르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쯤 아마 집에 있을 터였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내일 하루 휴가를 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내가 덧붙였다. “이건 내 인생과 행복이 걸린 문제야, 조르쥬. 당장 포니의 집으로 가야겠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그는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지금 포니의 집에 가봤자 자정이 훌쩍 넘는 시간일 테고, 또한 캔디도 잠자리에 들어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그녀는 편지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등의 질문이 오늘 밤 내내 나를 괴롭힐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내일 아침 일하러 나가기 전에 모든 궁금증과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고, 내가 무안하여 뭐라도 말하려고 하자 조르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윌리엄 님. 내일 업무는 제가 대리하겠습니다. 다만 꽤 거리가 멀 텐데요. 동행해드릴까요?”

“고마워. 그치만 나 혼자 다녀올게.”

“알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윌리엄 님. 부디 캔디스 님께 안부 전해주십시오.” 짤막하지만 묵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다시 한 번 고맙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떠나기 전 나는 고모님께 드리는 쪽지를 휘갈겨 쓴 다음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에르로이 고모님

도망친 것이 아니니 절대 놀라지 마세요. 내일 저녁까지 돌아오겠습니다.

윌리엄

나는 속도를 심하게 내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주의를 주고 또 주었다. 하도 정신없이, 흥분한 상태로 밟다보니 가는 도중에 차가 고장 나지나 않을지 걱정될 정도였다. 동시에 난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물론 편지가 그녀의 마음이 나의 희망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란 걸 암시해주기는 했으나, 계속 확신하지 못하고 의심을 하게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녀가 일기장을 열어보지 않은 행동은 그녀가 마음속에서 테리를 떠나보냈다는 것의 증거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아무튼, 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날지언정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부딪쳐보았던 나의 행동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내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녀에게 나의 사랑을 고백할 때가 되었다.

엔진 소리가 모두의 밤잠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 주차는 포니의 집 바로 앞에 하지 않기로 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미 자정이 되어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는 초승달과 밝은 별들이 가득했다. 나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람은 없는 듯하나, 가끔씩 올빼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포니의 언덕 위 캔디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튼튼한 가지에 밧줄 사다리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 누군가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지?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하며 곧장 나무쪽으로 달려갔다.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쌀쌀한 밤바람에 긴 곱슬머리를 흩날리고 있는 여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본 내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나는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캔디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다리에서 내려오다가,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녀는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렇게 늦은 밤이 아니었다면 비명까지 지를 필요는 없었을 텐데.

내가 그녀에게 가까이 가자,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하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그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돼…”

입고 있던 코트가 어깨에서 흘러내렸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거칠게 문지르며 스스로에게 호통을 쳤다.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얼른 방으로 들어가지 못해?”

그녀가 땅에 떨어진 코트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힌 순간, 난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그야말로 화들짝 놀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많이 놀랐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 곁에 몸을 숙이고 그녀의 두 눈을 마주보았다. 그녀의 눈에 스치는 모든 감정을 읽어내는 게 너무나 중요했다.

내가 그녀의 어깨에 코트를 다시 걸쳐주자, 그녀는 황급히 내 시선을 피했다. 달빛이 약간 드리운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얼굴을 붉히고 있는지 아닌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안절부절 못하는 것으로 볼 때, 그녀는 내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지금은 나 역시 몹시 긴장해서, 그리고 동시에 흥분해서 내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고대하고 고대했던 순간이 다가온 것을 느낀 나는 지체하지 않고 손 안에 있던 편지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아까 막 편지를 읽었어. 그리고 캔디 너와 당장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네…” 그녀가 웅얼거렸다.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너무… 걱정돼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를 본 내 마음이 너무나 조마조마해졌다. 나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내가 편지를 받았을까, 받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을 걱정했던 거니?”

“맞아요.”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내 반응을 무척이나 염려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훨씬 안심이 되었다. 나는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 “캔디, 편지에서 말했었지. 네가…”

나는 말을 자신 있게 끝마치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다음으로 무슨 말을 할지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감사한다고… 부모님이…”

차마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버렸다”라는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대신 말을 마무리해주었다. “네, 전 친부모님이 절 버리신 것에 대해 감사해요. 아니었다면 알버트 씨를 만나지도 못했겠죠.”

정확히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난 서둘러 물었다. “내가 널 아드레이 가로 입양했기 때문에 감사한다는 거니?”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그대로 들리는 것만 같았지만, 난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알버트 씨.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곳이 여기 포니의 언덕이 아니었던가요?”

진심 어린 행복한 웃음이 내 입가로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말은 틀림없이 내가 킬트를 입고 그녀 앞에 나타났던 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주 짧은 만남 이후 그녀가 내게 붙인 별명은 아직까지도 많이 당황스러울 정도지만, 지금은 둘 사이의 비밀로 남았다. 그때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마주쳤다. 그것도 약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우연으로. 부정할 여지없이 우리 둘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모든 삶의 순간순간을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다 표현 못할 정도로 너무나 감사했다. 이제 난 한 발자국을 더 내딛을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드레이 가문의 인장이 새겨진 보석함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편 다음 그 위에 보석함을 올려놓았다.

그녀가 어리둥절해하자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열어 봐.”

보석함 안에는 그녀가 수년 간 소중히 간직해온 휘장과 짝을 이루는, 킬트에 꽂는 은색 핀이 들어있었다.

내가 말했다. “너한테 돌려준 휘장과 이 핀이 사실은 한 쌍이야. 아주 옛날에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것이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거지.”

그녀는 핀이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를 물었다.

“킬트 바깥 쪽 아래에 꽂는 일종의 장신구 같은 거야.” 내가 덧붙였다. “옷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고정해두는 역할도 하고.”

“신기하네요! 너무 예뻐요.” 그녀는 핀의 앞뒤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달빛이 그것을 더욱 빛나게 했다.

나는 핀을 그녀의 코트 옷깃에 꽂아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캔디, 네가 이것을 맡아주었으면 좋겠어.”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목에 걸린 휘장을 보여주었다. “이미 이게 있는 걸요.”

“아니야.” 나는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네가 여전히 휘장을 지니고 있다는 게 내겐 참 뜻 깊은걸?”

“항상 왕자님을 그리워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내 눈을 피하며 조용히 말했다.

그 대답이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녀는 거의 들릴 듯 말듯하게 속삭였다. “왕자님이 오셔서 절 레이크우드로 데리고 가셨던 날 이후로는 단 하루도 맘 편히 잔 적이 없었어요…”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지만, 난 크게 감동을 받았다.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왔다. 나는 용기를 내어 다가가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녀의 얼굴에 잠깐 쑥스러운 빛이 스쳤다.

가슴이 뛰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캔디, 나도 항상 너를 그리워했어. 꿈을 꿀 때도, 꾸지 않을 때에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너뿐이었어.”

내 고백을 들은 그녀는 따스한 미소를 지었고, 감정이 한껏 고조된 얼굴이었다.

내가 이어서 말했다. “부탁이 있어.”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부터 부디 내가 네 법적 후견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녀는 기꺼이 내 부탁을 받아들였다. “전 단 한 번도 알버트 씨가 제 양아버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난 그녀를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오늘 밤에 특히 내 시선을 피했다.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거라 여겨서, 나는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턱을 들어 나와 눈을 맞추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을 했다. “그럼 난 너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 거니?”

그녀는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신은 언덕 위의 왕자님이에요.”

행복감이 밀려왔다. 언덕 위의 왕자가 그녀의 첫사랑이자 오랫동안 그녀를 지탱해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한 마디는 어떠한 대답보다도 내 영혼을 뒤흔들어놓았다.

난 그녀의 따뜻한 볼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내가 네게 킬트의 핀을 주고 싶었던 건, 다른 쌍도 있기 때문이었어. 네가 한 쌍, 내가 한 쌍을 간직하는 거야… 모두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될 때까지.”

그녀는 깜짝 놀라 커진 두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난 다 뚜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핀이 증표야… 우리가 하나가 될 거라는 약속의.”

주변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눈물을 참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떨렸다. “전 천하디 천한 고아인데…”

“중요하지 않아!” 나는 크게 소리쳤다. 내 목소리 크기에 스스로도 적잖이 놀랐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네 출신이 어떤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난 캔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니까!”

그녀의 눈동자가 달빛 속에서 빛났다. “하지만 에르로이 고모님께서 제 신분을 혐오하실 거예요…”

그녀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나는 이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귀담아 듣기로 했다. 불행한 현실에 굴복한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좌절과 자책으로 가득했다. “옛날보다는 덜하실지라도, 여전히 저에 대한 미움을 버리지 않으신 걸요.”

“내가 고모님과 이야기해볼게.” 나는 자신 있게 응수했다. “고모님께서 극심하게 편견에 사로잡혀 계시다는 건 나도 잘 알지만, 내게도 충분히 내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어. 아드레이 가의 총수는 고모님이 아니고 나야. 그리고 난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무릅쓸 각오가 돼있어.”

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마음이 굉장히 혼란스러운 듯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너의 마음을 알고 싶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주겠니?”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동시에 크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내게 말로 다 표현 못할 기쁨을 선사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고백했다. “캔디, 기억이 회복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너의 웃는 얼굴이었어. 그때 난 네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운,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거야.”

내 목소리에는 벅찬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이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내가 그녀를 내 품으로 당기자 입을 닫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의 감정을 품어왔어. 여동생이나 양녀가 아닌, 한 사람의 여인에게.”

그녀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나를 아주 세게 끌어안았다. 내 셔츠가 점점 젖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대로 영원히 서로를 안은 채 있고 싶었지만, 동시에 나는 지금보다 더 나아가기를 원했다.

잠시 후, 그녀는 젖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사랑해요, 알버트 씨. 알버트 씨가 사라지기까지는 저 스스로도 제 마음을 몰랐었죠. 너무 그리워서, 모든 생각이 알버트 씨에 대한 것뿐이었어요.”

그녀의 고백에 나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손끝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마, 캔디. 웃는 얼굴이 더 귀엽다고 했잖아?”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손가락이 그녀의 탐스러운 입술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호흡이 빨라졌다. 나는 몸을 숙이고 입술을 그녀의 것에 포갰다. 입을 맞춘 순간, 잃어버린 퍼즐이 마침내 제자리로 찾아온 듯 나는 완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에게 내 사랑을 고백하기를 얼마나 고대해왔던가!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눈꺼풀에, 주근깨에, 양쪽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고, 다시 그녀의 입술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우리의 심장 박동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녀에게서 떨어진 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서 사랑과 애정을 담아 그녀의 부드러운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댄 채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사랑스럽게 내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발그레해진 얼굴이 기쁨에 가득 찬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우 이상 서로를 향한 사랑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말했다. “캔디, 지금 성당으로 가자.”

그녀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왜요?”

“곧 알게 될 거야!” 나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포니의 집과 연결되어 있는 작은 성당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제단 가까이에 방석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자리를 잡고 무릎을 꿇었다. 캔디도 옆에서 똑같이 따라하면서 두 손을 모았다.

내가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자리에서 캔디스 화이트를 향한 제 마음을 고백합니다. 그녀와 함께 일생 동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밤낮, 깨어있는 모든 순간 그녀의 기쁨과 슬픔을 보듬어줄 것을 맹세합니다.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그녀를 지키며 그녀의 안식처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기도를 마치고 얼굴을 돌려보니, 어느새 눈물 줄기가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지금 하는 내 말을 꼭 기억해, 캔디. 내가 가진 온 힘을 다해서 너와의 약속을 지킬게. 시카고로 돌아가자마자 입양을 취소할 거야.”

그녀는 내게 신뢰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돌아가신 누님의 비밀 이야기를 꺼냈다. “최악의 경우엔, 로즈마리 누님과 빈센트 씨가 그랬던 것처럼 함께 달아나게 될 수도 있어. 조르쥬가 그들을 도왔지. 그때 고모님께서 얼마나 격분해하셨는지 대충 짐작이 가지?”

그 말에 놀란 그녀는 내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곧 마치 선서를 하는 것처럼 오른손을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알버트 씨가 가는 곳이라면, 저도 어디든지 따라가겠어요!”

그녀가 내게 두 팔을 감으며 포옹을 했다. 나는 쿡쿡거리고 웃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걱정 마, 캔디. 아직은 안 떠날 거야. 그런데 이제는 돌아가서 잠자리에 들어야하지 않겠니?”

그녀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오늘밤은 어디에서 지내실 건가요, 알버트 씨?”

“차로 가야지. 담요를 가져왔거든.”

“저도 데려가 주세요.”

나는 그녀의 대답에 흠칫 놀랐다. 그녀는 간청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내가 망설이고 있음을 눈치 챘는지, 예전에 그녀가 닐의 함정에 빠졌을 때 우리가 도시 외곽을 헤매다가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했으나, 그녀는 확고하게도 절대 나를 홀로 보내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결국 나는 그녀의 소망을 들어주었다.

우리는 차 뒷좌석에 바싹 붙어 앉아 담요 한 장을 나누어 덮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캔디가 먼저 천사 같은 얼굴에 편안한 미소를 띠운 채 잠들었다. 나는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과 씨름하면서 그녀의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녀를 곁을 지키고 싶다.

나도 곧 잠에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면서.

1장

2장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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